- 마력을 다 한 몸은 천천히 굳으며, 부서져서 사라져갔다.
- 이건 그 전의 악몽같은 기억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는것인가?
- 아니, 아니다.
- 그 때와는 다르다. 저 은빛 머리카락은, 분명...
히스클리프는 침대에서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지독한 경험이었다. 평범한 악몽이라면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한 느낌이었다. 마치 바로 전에 실제로 경험한 것 같은...
ㅡ아니, 실제라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서둘러 침대에서 나와 달려나갔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머리모양을 다듬을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얼른 그녀를 만나야했다. 그녀를 만나서, 나는ㅡ
"히스?"
"이리스...!"
얼마나 달렸을까. 이른 아침의 건물은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다. 정원에서 꽃을 바라보고 있던 이리스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몸이 먼저 움직여, 그녀의 몸을 세게 끌어안아 세상에 제대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히스? 괜찮아요?"
"아..."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차분함을 유지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놓아져있던 이성이 돌아오는 듯 했다. 내가 뭘 하고 있던거지? 분명 악몽을 꾸고, 이리스를 만나서ㅡ
"...악몽을 꿨어."
히스클리프는 애써 침착한 태도를 되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거의 울먹이기 직전의 목소리가 목에서 새어나왔다. 그녀를 안고있는 팔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리스는 그가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그의 등에 손을 올려 천천히 쓸어내렸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모두가 재액과 맞서서 싸웠어. 하지만 이기기엔 힘이 부족해서,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순간 곁에서, 네가... 그래서 나는..."
그녀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살아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더이상 주위에 있는 동료가 목숨을 잃는 것을 원치 않는 우려보다는, 조금 더 강한 감정이었다. 그녀가 사라진다면 나는 아마 버티지 못 할 거야. 하지만 어째서? 히스클리프는 아직도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 했다.
"네가...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 너는 나의 소중한 친구니까..."
혼란스러운 상태가 지속되면서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정리되지 않은 말로 천천히 전했다. 이리스는 그런 그의 말을 천천히 듣다가, 이내 웃음을 지었다.
"괜찮아요, 히스. 제 얼굴을 봐요."
그녀는 자신을 안고있던 히스클리프를 살짝 밀어내고, 그의 얼굴에 두 손을 대고 자신과 눈을 맞추도록 천천히 들어올렸다. 살짝 눈물이 맺힌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그녀의 자신있는 미소가 비춰졌다. 그 때 본 미소는 햇빛이 떠오르는 그 어떠한 순간보다 빛났을 것이라.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저는 히스를 끝까지 지키겠노라 다짐했는걸요!"
평소보다 훨씬 더 힘있고, 당찬 어조로 그녀는 히스에게 말했다. 지금의 그녀는 그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듬직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런 강한 모습은 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서는 사라지고, 언제나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리스는 히스클리프의 얼굴을 잡고있던 손을 놓고 말을 이어나갔다.
"히스보다 먼저 사라지지 않을거라 지금 이 곳에서 약속도 할 수 있는걸요! ...아, 그치만 이렇게 말하면 또 약속을 쉽게 여긴다고 생각되려나...? 그건 아닌데..."
끄응, 다른 곳을 바라보며 얼굴에 손을 대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녀의 얼굴이 어딘가 귀여워보여서, 그는 살짝 미소지었다. 방금까지 머릿속을 지배하던 혼란스러움이 어느새 눈녹듯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
내 곁에 계속 있어줘서. 그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답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을 그녀에게 전하는 것은, 그녀를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강한 자신이 된 후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왜냐면 지금의 자신은 조금 꼴사납게도 그녀한테 구해지기 일쑤니까.
이른 아침의 두 남녀의 모습이 그렇게 지나갔다.
한 여름의 꿈 ~냥냥패닉~ (0) | 2022.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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